LA에 사시는 어느 부모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큰 아이 David가 11학년이 돼서 첫 SAT시험을 쳤는데 Reading부분에서 540점이 나오자, 엄마가 "기절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는데, 미국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언제나 영어 성적이 A였던 아이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점수라는 것이었다. David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싫어해서 대신 단어 공부를 많이 시켰었는데,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에 100개도 거뜬히 외웠다고 했다. Wordly Wise나 Sadlier Oxford의 어휘집은 이미 9학년 때 고등학교 전체 과정을 혼자서 끝냈고 SAT에 나온다는 단어들도 닥치는 대로 다 외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SAT에서 영어 독해력 시험 점수가 예상보다 200점이나 낮게 나온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해 온 Samantha양이 SAT시험을 마치고 나서 한 말을 들어보자. "독해력 문제를 풀려고 먼저 지문을 읽는데, 글의 흐름이 안 잡히는 거에요. 눈으로는 분명히 읽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머리로 파악이 안됐어요. 결국 문제도 다 못 읽었는데 시간이 다 지나갔어요. 단어는 다 아는 것 같았는데요." 단순 암기식으로 영어 단어를 공부한 학생들이 말하는 경험담은 다음과 같다.
![]() 언젠가 홍 정욱 의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어는 자전거 타기처럼 한 번 배우면 잊혀지지 않는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홍 의원은 하버드 대학을 최 우등으로 졸업한 조기 유학의 전설적 인물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영어는 감각으로 배우는 것이다. 감각으로 익혀진 영어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학습원리를 홍의원은 그의 경험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실제로 올라 타 보지는 않고서 영어자전거 타는 방법만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기계적으로 암기한 단어는 아직 영어가 아니다. 그러나 감각을 기반으로 해서 습득된 영어단어 실력은 바로 그대로 독해력이고 작문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감각은 낱개로 외우는 단어에는 들어있지 않다. 그 단어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예문 안에만 들어있는 것이다. 독서 중에 읽는 예문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의 어휘력이 뛰어난 것도 바로 감각으로 단어를 익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책을 적게 읽어서 영어 감각이 약하고 점수 따기 훈련 등의 편법 의존도가 가장 높은 우리 한인 2세들이 대학 입학 후에 무더기로 중도 탈락하는 현상이 매년 되풀이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 영어자전거에 실제로 올라타고 나면 줄줄이 넘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홍정욱 의원이 미국에 조기 유학했을 당시 어떻게 영어를 정복했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가 어린 나이에 처음 미국 학교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을 때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한국에서 유학 준비하느라 꽤 열심히 갈고 닦았던 영어였지만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는데, 누가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조언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통째로 외우는 것은 외국어를 깨우치는 최고의 방법으로 이미 영어 교육자들 가운데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6~7십 년 전, 영어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기초 영어를 배우고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 가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아왔던 예전 선배들이 영어를 정복했던 바로 그 방법이었다. 소년 홍정욱은 그로부터 불과 수년 후, 그의 발군의 영어실력에 힘입어 자신이 다니던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학생회장에 당선되고 이어서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후에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영예까지 안게 되었다. 해마다 대학평의회(College Board)에서는 미국 전역에서 몇 %의 고등학생이 각 과목에서 A를 받고 있는지를 발표한다. 지난 5년간의 통계만 살펴봤을 때 단 한해도 4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만큼 성적 인플레가 심각하다. 다시 말해서 평소에 책 읽기를 게을리한 학생이 영어 과목에서 받은 A가 실제로는 C 혹은 D에 해당하는 경우는 흔하다는 뜻이다. 네 명이 A를 받았다면 그 중에서 진정한 A는 하나뿐이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지도하실 때, 내 아이만은 예외라고 생각하시지 말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하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셔야 한다. 원더 보이 홍정욱처럼 책을 다 외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책을 읽지 않던 학생들이 뒤늦게 책을 읽게 된다는 것 역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을 위한 빠른 돌파구가 바로 "좋은 예문 읽기"와 "좋은 예문 외우기"이다. 꼭 필요한 부분만을 집약적으로 모아놓은 좋은 예문들을 반복적으로 읽어 나가면, 평생 잊지 않는 어휘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독해력과 작문능력도 함께 키워 나갈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것도 독서를 통해서 얻는 것보다 훨씬 빠른 능률로 말이다. 무리 지어 몰려가는 군중으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러나 기계적 단어암기와 점수 따기 문제 훈련을 따라서 몰려가는 군중 속에 머무르는 한, "영어정복"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영어는 큰 덩어리로 배워야 감각이 살아난다. 보다 깊은 지혜의 눈을 열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를 향해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왜곡된 교육문화에서 오늘 벗어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글: 조 덕성, [email protected] |